ARTWA Note

ARTWA Artist - 디황 02

지난 첫 회 1990년대 디황 작가가 경험한 미국의 예술문화 전반을 조명하였다. 또한 다양한 매체로 창작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잠시 살펴보았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호황으로 뉴욕은 자본의 유입 및 소비가 급격히 활성화되면서 제품의 대량생산, 대중매체의 확산으로 존재했던 문화예술 또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대중매체를 통하여 아이돌 가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백스트리트보이즈(Backstreet Boys), 엔싱크(NSYNC),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등 수 많은 팀들이 기업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10대 청소년들을 타겟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산업이 음악의 새로운 주류로 탄생한다.

대중예술의 발달은 비단 음악계에서만 보인 것은 아니다. 어느 문화 비평가는 1990년대를 ‘혁신과의 작별(戴锦华, farewell to revolu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격변하는 시장의 역동성으로 인하여 이데올로기가 상실 사회상을 비판하였다. 대중매체의 급속한 확산과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은 예술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작품의 주제나 그 깊이를 사유하기보다는 표현방식과 같은 방법론에 집중하게 된다. 인터넷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글로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이는 문화차이를 즉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었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증대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시기의 사회를 경험한 개개인은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일환으로 스스로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본인이 속한 지역에서 그 근원을 찾기 시작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독창성을 찾아가는 예술가의 여정은 명성을 얻는 여정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디황 작가는 1999년 이후 전자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예술가로서 뉴욕에서 자본의 힘을 경험했고 사회적 현실이었던 예술의 무분별한 복제와 깊이 없는 무한생산으로 사라져가는 예술의 가치를 직면한 후 스스로를 되찾고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90년대 초 경제적 호황기를 누리던 미국은 문화가 급변하고 성장하고 있는데 반해서 대한민국은 같은 시기 미국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은 가파른 경제 팽창을 보이다가 1997년에 ‘IMF’ 외환위기 사건으로 여러 기업들의 파산과 실업난으로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바탕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하였으나 그 당시 시민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화예술과 같은 분야는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의미 없는 소비로 치부되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 시기에 디황 작가는 그의 작업을 기계산업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그가 어릴 적 부터 애착을 가졌던 오토바이와 미국유학실절 채득한 순수예술과의 접목이었다. 그는 서울의 공업지대 성수동에 터전을 잡고 4여 년 동안 오토바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그의 오토바이작업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요코하마 핫로드 커스텀쇼(Hot Rod Custom Show)에 한국인 최초로 두 차례나 초대된다. 또한 국내뿐만 아니라 그 분야의 전 세계 마니아들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이러한 디황의 커스텀바이크라는 산업은 그가 예술에 기반을 둔 본질적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놓지 않았기에 새로운 작품 ‘GARAT 시리즈’로 발전하게 된다. GARAT이란 산업 표현주의(Industrial Expressionism)를 의미하며 작가가 만들어낸 ‘창고(Garage)’와 ‘예술(Art)’의 합성명사이다. 그는 동시대미술에서 예술가의 표현에 있어 필수요소인 ‘노동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작품을 선보였다.

*글로컬: 세계화의 확산과 함께 지역성의 회복, 지역의 독자성의 요구에 대한 움직임이 강해졌으며 또한 국가를 대신하는 단위로서의 지역에 관심이 기울여지고 있다(로컬리즘, 리저널리즘). 상호의존이 높아지는 와중에 지역의 역할확대가 기대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글로벌 지역주의라고 한다.

Text by 이선주

나는 세상 밖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가끔 그럴듯하게 보였던 모든 것들은 그것들의 탐닉이 끝날 즈음 차창 밖의 풍경처럼 언제나 나의 가슴을 비우고 사라져 갔다.

나는 그래서 세상을 허무와 연민의 감정으로, 때론 그 모든 종착역을 처절히 느껴버린 시점에 의하여 아직도 세상 밖에서 무지개를 잡으려하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많은 이들에게 어둡고 시니컬하며 염세적으로 비추어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나의 작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작업은 곧, 내 감정 찌꺼기의 이러저러한 나열과 조합이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이 만일 존재한다면, 아니 최소한 고통과 번민을 최소화하고자 한다면, 그것들을 그들이 열중하는 모든 가치와 이념, 사상, 도덕성, 쾌락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 의해 주입되어왔던 내 자신 속에 잔재 해 있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떠나보내며 나를 가벼이.. 더더욱 가벼이 만드는 것에 안도하며 휴식한다.

내가 앞으로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를 이룩해 나갈 것이 있고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은 순전히 빚을 갚기 위한 행위일 뿐일 것이다.

누구나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빚을 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내 최소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물리적 여건과 정신적 배려를 해준 이들에 대한 보답…….

그것은 빚이다. 또한 나의 보답은 사랑이며, 그들의 성숙에 일조하고픈 작은 소망일뿐이다.

 

-text by D Hwang

<Installation view>

<D Hwang, GS-01,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