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선 (Jun, Kyung-Sun) | 허실공간(虛實空間)_Space between real and unreal

Text by 최유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란 없다. 무엇으로든 채워지기 마련이다. 필자는 빈 공간에는 공기와 에너지 그리고 그것들의 기류가 무형의 형태로 펼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간과 인간의 만든 공간에는 다른 차원의 경계가 생김으로 해서 보이는 것만으로는 유추할 수 없는 기운을 느끼는 것이라 믿는다. 건축가와 예술가야 말로 이러한 공간에 ‘경계’(Boundary)를 짓는 창의적인 사람들이다.

 

회화 같은 조각, 공간을 드로잉 하는 작가 전경선.

그녀 작품의 특징은 개방성에 있다. 이는 마치 독립된 세계가 아니라 그저 스쳐지나가는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감상자로 하여금 우연히 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끔 한다. 흡사 영화의 시놉시스(synopsis)를 대하듯 작가의 주관이 뚜렷하게 드러남과 동시에 작품의 주제, 의도, 인물, 줄거리가 구체적으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낮지 않다.

 

작품의 의도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료하게 하는 알고리즘인 개방성과 더불어 평면적인 것에서 깊이 있는 것으로의 전이 또한 근래 전경선 작업의 특징이다. 입체감과 더불어 공간적 심도야말로 오랜 시간 아래 터득하는 점진적 과정을 동반하고 있다. 고전적인 조각처럼 경직되고 판판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유동적인 형태로의 변화는 자유로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여기에 짙은 내레이션이 투영된 오늘날의 작업들은 자칫 난해한 기호마냥 인식될 수 있는 하나의 객체 혹은 물자체로써의 한계를 제한한다. 공간을 장악하는 형상과 각각의 스토리가 오버랩 되면서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며, 이는 형상 너머의 세계이자 그녀가 상상하는 ‘꿈의 공간’으로 타자를 인도한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말하는 ‘꿈의 공간’이란 무엇인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에게 있어 꿈의 공간은 과거 순수했던 유년 시절의 투명한 ‘기억의 수장고’를 가리킨다. 이 수장고는 그녀 작업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올 한 올 실을 뽑듯 그 공간에서 창작의 미감을 끌어올린다. 즉, 그녀의 수장고로부터 알음알음 새어나온 기억의 파편들이 현실과 상상이 버무려진 공간에 놓임과 동시에 시각적 표상에 대한 언어적 표상으로의 공간이 되고, 이를 통해 환유의 공간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환유의 공간은 가상의 공간, 무형의 공간, 사유의 공간일 뿐 현실의 리얼리티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의 공간은 ‘허실공간’이다.

 

‘허실공간’은 물질을 우선시 하는 현대인들의 분주함 속 공허함, 준비 되지 않은 채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미완의 인간을 보여준다. 특히 동전의 양면처럼 친밀한 관계 속에서 느끼는 고독을 잉태하며, 이중적인 모습을 한 채 소외감과 혼돈마저 생성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 허실공간의 틈에서 유년시절 지녔던 꿈과 이상이 현실에 경계 없이 강하게 존재함을 말한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세계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나침반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허(虛)와 실(實)을 대표하는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른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전경선의 작업은 유년의 기억과 재생, 현재로 소환한 정신적 기록의 환류의 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진정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라고 되묻는다. 이러한 자문자답은 사람들 속에 감춰진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관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이러한 생각이 누적됨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해답을 안내한다.

물론 예술가의 삶이 다 그러하듯 그녀가 개척하는 길이 그리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허나 벤야민의 말처럼 늘 길을 내는 사람은 교차로에 서 있기 마련이고,그렇기에 고뇌도 동반하지만 그 길이 무의미한 길이 아닐 수 있음을 우린 그녀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현재 작가 전경선은 한국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1년간 조각을 전공하고, 2004년 스페인에서 ‘Memory –Negative Coexitece’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호흡을 가다듬듯 천천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선보여 왔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그녀의 상상 속에서만 등장하는 사람들의 기묘한 형상, 동물을 의인화하고 반인반수, 나무와 인간이 하나가 된 신비한 존재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장면들이 그 이야기의 주제가 되고, 5m높이의 대작에서부터 손바닥만 한 소품까지 밀가루를 반죽하듯 ‘나무’를 조각하는 그녀의 작업은 이미 형상만으로도 인간 내면의 심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이 본질에 대하여 효과적이며 명료한 형태를 부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상자의 관계 속에서 판단되겠지만 대상에 대한 개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형태와 메시지는 감상자의 기질에 따라서 그때그때 다르게 파악되어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 또한 전경선 작업이 지닌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