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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A Note

ARTWA Artist - 디황 01

디황 작가를 소개하는 첫 줄의 시작은 그의 예술활동이 시작되는 ‘1990년대의 미국과 한국의 거시경제, 정치 및 문화 트렌드’에 대한 배경을 먼저 짚어보고자 한다.

1990년대는 구소련의 해체, 서비스업의 발달로 전세계적으로 경제체재의 변화, 세계화, 인터넷의 보급 등 시대의 흐름을 격변시키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미국의 1990년대는 역사상 경제가 가장 안정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시기였다. 매년 상승하는 경제성장률과 낮은 인플레이션, 높은 취업률은 21세기를 맞이하는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다.

 

특별히 미국의 90년대 문화코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이다. 대중 매체의 보급은 다양한 음악 장르의 흐름에 이름을 남기는 뮤지션들이 탄생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펑크(Punk), 락(Rock), 알앤비(R&B),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와 같은 장르는 이 시기를 통해 더욱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그들이 열광할 수 있는 공연, 앨범을 쏟아냈다. 팝음악이 세계를 휩쓸기 전 락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는 하드락(Hard Rock), 얼터너티브락(Alternative Rock), 소프트락(Soft Rock)과 같이 다장르로 확장된다. 본조비(Bon Jovi), 롤링스톤(Rolling Stone), 스콜피온즈(Scorpions), 레드제플린(Led Zeppelin) 등 개성 강한 뮤지션들은 락 세계의 특징을 창조해 나갔다.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표출하는 카리스마는 90년대에도 이어졌다. 유투(U2), 너바나(Nervana), 라디오헤드(Radiohead), 레드핫칠리페퍼즈(Red hot Chili Peppers) 등 락의 호황기였다. 너바나의 앨범 네버마인드(Nevermind(1991))의 경우, 3천만장 이상이 팔리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1992년 대중음악채널 MTV에서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공연도 하게된다. 대중매체는 패션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돈나(Madonna)의 꼬깔콘 모양 브라탑, 노다웃 그웬스테파니(No Doubt, Gwen Stefani)의 펑크 스타일, 스파이스 걸즈(Spice Girls)의 그룹 패션 등의 상징적인 아이콘은 미디어의 발달로 ‘스타일’이 음악과 함께 얼마나 사람들에게 지각되었는지 엿볼 수 있다.

 

미술 분야도 이러한 정치적 관념의 혼돈, 세계화, 밀레니엄, 디지털의 확산은 순수미술 작가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인종, 계층, 성별, 에이즈, 빈곤과 같은 사회정치적 주제를 다루며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페인팅과 같은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약국(Pharmacy, 1992) 은 실제 약국처럼 설치된 공간에서 관람객이 돈을 내고 약을 사는 행위를 하는 관객참여형 전시를 선보였고,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ael Whiteread)의 집(House, 1992)은 런던의 노동자의 집을 통째로 캐스팅하여 전시를 한다. 경제호황국 미국은 동시대미술의 중심지로 이미 입지를 굳힌 채 다양한 전시들이 소개되었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상을 수상한 Electric Earth(1999)는 휘트니 비엔날레(The Whitney Biennial)에서 1997년 선보인 최초의 다중채널 미디어아트이다.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한 “Cremaster Cycle”(1994) 작업은 조각, 드로잉, 책을 이용한 필름작업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러한 경제호황과 문화융성의 중심이었던 90년대 미국 뉴욕에서 디황작가는 파슨스 디자인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2000년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뉴욕에서 그는 위에서 언급하였던 미국의 문화를 모두 경험한 것이다. 그가 페인트, 조각, 영상, 사진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을 선보이는 이유는 장르의 구분 자체가 사라졌던 뉴욕 미술을 접한 그에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Text By 이선주

‘1999년 전 세계가 밀레니엄을 맞이하고 있을 때, 그 중심의 용광로 같은 뉴욕 맨하튼에 나는 있었다. 개인적으로 뉴욕시절 가장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던 나는 육체도 정신도 “이 환멸의 뉴욕에서 탈출 할 생각” 만을 하고 있었다. 어떠한 기력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의자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끄적이는것 뿐이었다. 1999년 20세기의 끝자락에서 유일하게 작업한 디지털 드로잉이다..

이 작품들은 단 한번도 전시된 적이 없다.’

-text by D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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