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넷 에힐만 (Janet Echelman)_ 기류조각(氣流彫刻)_stream sculpture

Text by 최유진

우연히 하늘을 바라보다 빛으로 ‘바람의 결’을 형상화한 거대한 규모의 설치작품과 조우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넷 에힐만(Janet Echelman)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웅대한 자연의 물결이 하늘에 수를 놓은 듯 일렁이며 기하학적인 회화 작품마냥 리듬감을 연출한다면 나아가, 그 재료가 만약 물고기 잡이에 사용되는‘그물’이라면 그 작품은 틀림없이 자넷 에힐만의 조형물(造形物)이다.

빛과 바람, 물과 같이 보이지 않거나 유동하는 대상을 시각 인지화 시켜온 조형예술가 자넷 에힐만은 미술을 통해 도시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혁신적인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지난 과정 속엔 작가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소소함에도 잃지 않는 호기심, 기회를 실현화하는 적극적인 열정이 녹아있다.

 

자넷 에힐만은 1966년 미국 플로리다주 템파(Tampa, FL, United States)에서 태어났다. 은퇴자들이 노후를 보내는 곳으로 유명한 템파는 풍요로운 자연 경관과 사계절 온화한 기후를 특징으로 한다. 에힐만은 이곳 템파에서 사시사철 웅장하게 출렁이거나 고요한 바다를 벗 삼고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일상으로 체감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때문에 오늘날 그의 여러 환상적인 작업들은 이러한 환경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투영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힐만은 굉장히 특이한 교육과정과 경험을 갖고 있다. 그녀는 1983년부터 공부를 시작해 1995년에 이르기까지 12년간 7개의 대학에서 6가지 각기 다른 전공을 익혔다. 예를 들면, 하버드 대학교에서 환경학을 배웠고, International School of America 수학 당시엔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발리, 인디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등의 다국가에 대한 비교 연구를 했다. 또한, 홍콩대학교에서는 중국 풍경화와 서예를 전공했으며, 레슬리대 학교에서는 상담심리학을 배웠다. 이뿐 아니라, 바드 칼리지에서는 순수미술로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은 그녀의 예술영역을 확장시키는 탄탄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첫 발은 그리 순탄한 건 아니었다. 예술가가 되고자 했던 그녀는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7개의 예술대학에 지원했지만 모두 입학을 거절당했다. 아무도 그녀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실망하지 않고 스스로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하여 이후 10년간 혼자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인생의 중요한 단락에서 준비된 노력이 ‘기회’와 맞닿았을 때 어떻게 기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계제가 인도에서의 전시였다.

외롭게 홀로 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자넷 에힐만은 1946년 설립되어 오랜 시간 전 세계 지식인들을 지원하고 배출해온 풀브라이트(Fulbright)재단의 도움으로 회화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에 인도로 넘어간 에힐만은 작업에 전념했다. 하지만 전시회 마감기한을 앞두고도 작업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고민 끝에 그녀는 회화 대신 부피가 큰 청동작업으로 방향을 튼 후, 인도 남부에 위치한 어촌 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으로 갔다. 하지만 청동은 무거웠고, 재료가 너무 비싸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에힐만에게 그것은 ‘좌절’의 다른 말과 진배없었다. 적어도 당시엔 그랬다. 헌데, 좌절하고 있던 그녀는 우연히 산책을 하다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너부러져 있는 어부들의 그물꾸러미를 목격하고 작업의 새로운 접근방식을 떠올렸다. 무겁고 단단하며 속이 꽉 찬 재료가 아니라 그물을 사용해 비어있고 부피감 있는 형태를 만드는 조형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곤 지체 없이 어부들과 협업을 통해 그물 조각을 시작한다. 그때가 1997년으로, 처음으로 만족스럽게 작업한 조각은 <풍만한 엉덩이(wide hip)>)라고 이름붙인 자화상이었다.

 

생업에 필요한 사물을 예술적 용도로 치환하고, 자연요소에 의해 요동하는 부피감 풍만한 그물의 변화는 에힐만을 만족스럽게 했다. 바람이 불때마다 부드럽게 율동하는 조각품의 패턴은 시각적으로 매료되기에 충분했으며 건축과 미술,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물기를 가장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언어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전통적인 그물공예 방식을 통한 작업에 몰두한다. 특히 그물장인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그물 패턴을 연구하고, 리투아니아(Lithuania)의 레이스 공예가들과 함께 수준 높은 디테일을 구축하는 등, 그의 그물작업에 대한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후 에힐만은 심도 있는 전문 학습과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그녀만의 예술세계를 일군다. 그러던 중 에힐만의 명성을 드높이게 되는 계기가 찾아온다. 바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마드리드(Madrid)에서의 전시와 덴버(Denver)시가 요청한 조형물이었다. 이중 마드리드 전시는 에힐만의 예술적 역량이 재발견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녀는 관람자들이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작품 속에 젖어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다 큰 규모의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곤 어부들과 함께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백오십만개의 수작업 매듭으로 대형 그물 작품을 완성해 마드리드에 잠시 설치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 작품을 감상했고 그중에 도시계획가 마누엘 솔라 모랄레스(Manual Sola-Morales)도 있었다.

포르투갈(Portugal)의 도시 포르투(port0)의 수변경관을 새롭게 디자인 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모랄레스는 에힐만의 작품을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상상력과 환상성이 결부된 그녀의 작품에 젖어들고 만다. 그것은 매우 시적이었으며 동시에 많은 것들을 자극하는 여백의 조형이었다. 모랄레스는 그녀의 작업이 도시의 영구적인 조형물 설치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작가의 노력과 열정 또한 모랄레스의 가치판단에 부족함 없이 기여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비록 원형 교차로 위에 설치해야 하는 장소적 특성상 그물을 고정시킬 20톤가량의 철골 고리를 사용해야 했고, 자외선에 강하면서 염분과 대기오염에도 잘 견디며 미세한 바람에도 부드럽고 유유히 흔들릴 수 있는 섬유재료를 찾아 2년 동안 헤매야 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자넷 에힐만을 세계적인 예술가로 이끈 포르투 교차로는 에힐만의 작업 덕분에 단조롭던 장소가 특색 있는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손으로 묶은 매듭은 허리케인에 견딜 수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대의 독특한 수공예품 제작을 기계화 하는 생산 시스템 개발에 단초를 부여했고, 1400평(4645 sq M)의 레이스 그물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이 작업은 기존 어부의 도움으로 새로운 재료로서의 조형적 그물을 만들 수 있던 것처럼 일상적인 풍속에 우아하게 움직이면서도 허리케인에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뛰어난 항공엔지니어인 헤펠(Peter Heppel)의 도움을 받는 등, 그녀 작업의 또 다른 핵심인 협업의 가치를 재증명하는 사례로도 기록되고 있다.

 

에힐만의 잠재된 작품성이 효과적으로 발현될 수 있었던 데에는 덴버시(市)(Denver)의 요청도 한 몫 했다. 미국 콜로라도주에 위치한 덴버시는 비엔날레를 위해 에힐만에게 서반구 35개국의 상호 연계성을 나타낼 수 있는 조형물을 부탁했다. 이에 그녀는 각 나라와 지구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주는 자연 현상을 프로젝트에 적용시키는 작업을 구상했다. 그중에서도 칠레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태평양 전체를 걸쳐 퍼져나가는 쓰나미의 자연재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다양한 데이터를 작품의 형태로 삼아 지구의 하루가 줄어드는 것을 백만분의 일초로 나타낸 작품 <1.26>을 선보였다. 물론 비전통적인 재료인 그물을 통한 통합의 메시지는 교직 된 그 그물의 모양처럼 원활하게 녹아 들었다.

그러나 이 작업이 남긴 건 단지 심미적 아우라만은 아니었다. 기존 철골 고리를 이용해 설치하기에는 쓰나미 데이터의 형태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철골보다15배 강한 섬유로 대체하면서 모든 구성요소를 부드럽고 가볍게 만들어 기존 건물에 묶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었다. 원형의 스틸 구조물에 그물을 설치하는 방식에서 현재의 형태처럼 유연한 모습으로 진화시킨 또 다른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나아가 자넷 에힐만의 작품이 작품자체로서만 아니라, 도시 구성조직의 일부분이 될 수 있게 된 것도 이 프로젝트 덕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프로젝트는 에힐만의 작품을 한 단계씩 발전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작가 역시 알을 깨고 부화하는 새처럼 그 기회들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그간의 경험과 지식은 그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에 필요한 기술적, 물리적 요소들이 지닌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매 시기마다 도전을 위한 동기부여가 되곤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녀는 자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 작가 스스로 멈추지 않는 이상 혼자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날 것의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융합적 사고를 지닌 예술가이다.

 

한편 현재 그녀의 작업은 미국에서 가장 역사적인 도시로 꼽히는 필라델피아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되고 있다.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물 입자 작업인데, 진화하는 자넷 에힐만의 이 작품은 2016년이면 영구적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게 된다. 습하지 않은 안개를 만들기 위해 세분화된 물 입자 조형재료를 선택하거나, 물 입자들이 바람에 의해 형태가 생성되지만 사람들이 젖지 않으면서 ‘자연 상황’을 체감할 수 있는 특별한 방식 및 새로운 재료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 내부엔 변화에 대한 끝없는 노력, 준비된 경험과 열정, 충만한 호기심을 텃밭으로 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용기 등이 이입되어 있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이 그녀 작업을 대리하는 ‘기류조각(氣流彫刻)’의 소중한 알고리즘으로 작동하고 있음은 두 말 할 이유가 없다. 18년간 ‘그물‘을 재료로 작업하던 작가의 새로운 실험성이 더욱 자유롭게 비상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또한, 오는 11월에는 에힐만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워싱턴에 위치한 스미소니언 뮤지엄(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의 지원을 받아 스미소니언 뮤지엄 분관인 렌윅 미술관(Renwick Gallery)에서 선보이는 <WONDER>가 그것이다.

18년간 ‘그물‘을 재료로 작업하던 작가의 새로운 실험적 작품이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서 더욱 자유로운 형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