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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A PICK] 도큐멘타(documenta) 03


<사진출처: 도큐멘타 공식사이트>

지난 총 13회의 도큐멘타 결과수치를 보면 9회째였던 1992년은 이상하리만큼 많은 관람객 수와 높은 예산편성이 눈에 들어온다.

도큐멘타 역사상 가장 관심을 끌었던 해로 기록되는데,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도큐멘타를 보기 위하여 카셀로 모여들었다. 7개의 추가 전시공간을 지원받았으며 지난 회에 비하여 약 6배에 달하는 예산이 편성되었다. (현재 환율 기준 약 60억 원)

성공을 이끌었던 총괄디렉터 잔 호에(Jan Hoet)는 미술사적 카테고리 범주 안에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방식이 아닌, 실험적인 작업을 대변하는 작가를 조명하게 된다. 기존 도큐멘타의 기획을 수용하면서도 동시대미술의 실험소라는 현재 도큐멘타의 특징을 형성하게 되는 최초의 시도였던 것이다. 독일인이 아니라 벨기에인 이라는 이유로 그의 역량을 오프닝 전날까지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변화가 필요했던 도큐멘타를 성공적으로 이끈 디렉터로 기록된다.

<Jan Hoet, 1992>

<사진출처: 도큐멘타 공식사이트>

"From body to body to bodies" (몸에서 몸으로, 그리고 우리로)라는 시적인 제목은, 에이즈와 같은 질병과 전쟁, 세계기후변화 라는 거대공포의 확산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인간생존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관람자 참여 방식의 전시방법은 재즈, 복싱, 야구와 같은 미술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기도 하고 다중채널을 이용하여 가상현실을 경험하게 하였다.

세계 각 나라를 여행하며 미술 프로모터(art promoter)였던 호에는 아주 흥미로운 미술이 유럽 이외의 국가들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의 작가들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Man walking to the sky, Jonathan Borofsky>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992년 정부에서 작품을 구입하여 지금도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작품>

물론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100일의 전시가 대성공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약 20만 명의 인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 3배가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던 그 해는 마을 주민들의 협동과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없었다면 이 전시는 혼란 속에서 전혀 다른 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아를의 포토페스티벌(Rencontres d'Arles)의 성공적인 발전요소였던 주민참여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을 하게 된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가이드를 하고, 부족한 숙박 장소를 보충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집에서 숙박 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뛰어난 한 사람의 역할도 컸지만 위처럼 공동의 노력이 지금도 기록적인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 도큐멘타9를 만든 것이다.

Text by 이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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