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WA PICK]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03

December 5, 2016

휘트니 미술관은 1931년 개관 이듬해인 1932년부터 미국 내 신진 작가를 발굴하여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휘트니 미술제’를 개최한다. 개관 초기부터 동시대 미국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의 창조적 재능을 믿었기에 전시의 기회를 준 것이다. 이 전시는 “심사위원도 없고, 상도 없다(no juries, no prizes)”는 구호를 내세웠고, 작가들 스스로 전시회에 내걸 작품들을 선택하게 했다. 현재는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탈리아의 베니스비엔날레와 더불어 세계 3대 비엔날레로 손꼽히고 있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는 가을에는 회화 작품을, 봄에는 조각 작품을 선보이며, 일년에 2차례씩 전시를 개최한다. 휘트니를 대표하는 작가인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제 1회에 참여하였다. 이 외에도 이 당시에 함께한 작가들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찰스 쉴러(Charles Sheeler), 라파엘 소여(Raphael Soyer)등이 있다. 1946년에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액션페인팅 작품을 선보여 “놀라운 모더니스트”의 감수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Red Canna>, 1923

 

찰스 쉴러 (Charles Sheeler), <Amoskeag Canal>, 1948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Eyes in the Heat>, 1946 

 

 

1959년부터는 일년에 한번씩, 회화와 조각을 번갈아 가면서 선보인다. 1960년대 말에는 여러 미술가들의 작품을 늘어놓는 전시 방식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고, 체계적인 전시 기획에 대한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1969년에 휘트니 미술관의 관장 존 바우어(John. I. H. Baur)도 이에 동의하면서 더 이상 객관적인 방식으로 “창조적인 흐름의 단면을 대략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에는 매회 하나의 테마를 정하게 되었다.

 

그 이후, 1973년부터는 조각과 회화를 합쳐서 2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비엔날레’ 형식으로 바뀌었다. 형식이 바뀌면서 그 규모는 커지게 된다. 당시에는 신진 작가이던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 피터 캠퍼스(Peter Campus)가 참가하였고,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조안 미첼(Joan Mitchell), 로버트 마더웰 (Robert Motherwell) 등의 중견 작가들도 초대하면서 ‘미국 미술의 현재’를 조망하였다.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소개하는 장르도 다양해 지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처음으로 비디오 아트 작품을 선보였고, 1977년에는 영화를 선보였다. 이로써 휘트니 비엔날레는 회화와 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설치 미술, 행위 예술, 건축, 디자인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전시회의 성격으로 변모하게 된다.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 <Untitled (We Don't Need Another Hero)>, 1987

 

피터 캠퍼스(Peter Campus), <third tape>, 1976

 

 

 

8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휘트니 비엔날레와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에 대하여는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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