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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A PICK]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 02 - 말콤 몰리(Malcolm Morley), 1984

1980년대 영국은 2차산업의 중심이었던 석탄산업의 붕괴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미술은 영국인에게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에서는 경쟁력 있는 문화, 예술산업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 중 하나가 테이트(TATE)의 터너 상(Turner Prize) 제정이었으며 그 목적은 아래와 같다.

  1. 동시대미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영국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미래를 위한 지적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함.

  2. 국고로 운영되는 테이트에서 전략적으로 작품소장을 할 수 있는 창구의 역할이 되고자 함.

테이트는 사실 1970년대 시민들로부터 혹독한 질타를 받고 있었다. 이는 1976년 선데이 타임즈(The Sunday Times)에 테이트의 새로운 소장품 칼 안드레(Carl Andre)의 작품 [Equivalent VIII]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미니멀리즘 작가 칼의 이 작품은 120개의 벽돌을 직육면체로 쌓아올린 형상이었는데, 시민들은 쓸데없는 작품을 소장하는데 국고가 쓰였다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미국 미니멀리즘 조각가 칼 안드레의 작품 설치전경>

테이트를 동시대미술에 집중하는 미술관으로 만들려는 영국정부의 정책과, 일반 시민들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큰 스캔들이었다. 이를 계기로 테이트에서는 어워드를 매년 개최하여 시민들에게 작가와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그 의미를 알리고자 한 것이 터너상 제정의 취지였다.

터너 상은 19세기 영국 화가 터너(J.M.Turner)의 이름이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풍경화를 주로 그렸는데 형태의 생략과 과감한 색체를 사용하여 빛을 담아내는 실험적 작업은 그 당시에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는 낭만주의 사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빛의 화가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확고한 작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서양 미술사에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였다.

터너 상은 그 이름에 의미를 두어 영국 출신 시각예술가에게 주어지며, 1년 간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미술가 4명을 선별 후 최종 1명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현재는 노미네이트 된 것 만으로도 최종 수상자 만큼 이슈가 되고 있다.

1984년 첫 번째 수상자는 말콤 몰리(Malcolm Morley)이다. 1931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청년 시절 자전거를 훔친 죄로 감옥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출소 후 그는 캠버웰 예술대학(Camberwell school of arts)과 왕립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미술학교를 다녔다. 학생시절 중 그는 1956년 테이트 갤러리의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전 (Modern Art in the United States)’ 에서 미국 현대미술의 표현주의(Expressionism) 큰 영감을 받았고 졸업 후 뉴욕에서의 생활을 하게 된다.

<1956년 출판된 책 ‘Modern Art in the United States’>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바넷 뉴먼(Barnett Newman)등의 작가들과 교류를 하였는데 살바도르 달리는 그에게 ‘나는 무의식을 그리고, 너는 의식을 그린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특히 세잔느(Paul Cézanne)가 화폭에 입체를 표현하려는 방식에 대한 연구와 그림의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해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는 대상의 본질을 화폭에 담아내고 고정관념에 속한 의미는 배제하려는 시도는 회화를 하는 두 작가의 공통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콤 몰리는 전혀 다른 표현방식을 택하였고 이는 극사실주의(Photorealism)라는 사조가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가 포스터, 팜플렛, 뉴스 등에서 사진을 차용하여 회화로 재현하는 극사실주의 작업은 미술계에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의 극사실주의 작업은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5, 6에 연이어 초대되었다>.

그 후 1980년대 초에는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 사조에 영향을 준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기도 했지만, 이는 이전 명성에 비하여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작업 과정을 음악의 리듬 요소와 접목시키는 시도를 한다.>

<미술 전문 월간지 Art in America 1983년 12월 호는 표현주의를 소개하였고 그 표지는 그의 작품이 실렸다.>

이러한 활동은 모두 미국 뉴욕에서 이루어졌는데, 그의 1962년부터 1982년까지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아 처음으로 회고전을 연 것은 런던의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였다.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1901에 개관한 영국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며, 동시대미술을 영국 시민들에게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하여 설립된 곳이다. 피카소(Picasso)가 스페인 내전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그린 게르니카(Guernica)를 1939년 전시한 곳으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지금의 테이트 모던 총괄 디렉터이기도 한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의 기획에 의하여 전시가 열렸다. 영국 출신으로 미술 사조에 영향을 끼쳤던 그의 회고전은 다음 해인 1984년 터너 상을 받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화이트 채플에서의 전시 전경 (1983)>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출판한 말콤몰리의 전시도록>

이러한 연유로, 처음 수상했을 당시 작가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였고, 터너 상 심사위원에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니콜라스 세로타가 있었다는 점이 작가 선별 기준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첫 터너 시상식 초대장(1984)>

<터너 시상식 전시 설치 전경과 말콤 몰리>

이렇게 첫 터너 상은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전세계 미술상 중 손꼽히게 널리 알려진 상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고 본다.

다음은 1991년 터너상 수상자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를 소개하고자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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