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WA Lab] Künstler 03 - 헤르만 니치 (Hermann Nitsch)

July 19, 2017

 

 

 

우리를 통해 흐르는 창조적 역동성은 극단적인 ‘환희’로 몰고 갔다.

우리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려고 한다.

가장 극단적인 강렬함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미쳐 날뛰고 고통스러운 행복으로 몰고 간다.

‘유희의 과도함’은 굉음을 내는 음악과 무아지경의 고함에 의해 결정된다.

 

- ‘광란의 비밀 축제’를 마치고 난 후 text by Hermann Nitsch

 

 

작업하는 니치의 모습

 

 

 

Malaktion, Wiener Secession, 1987

 

 

 

헤르만 니치는 오스트리아 출생이고 세계를 대표하는 전위 예술가이다. Augustine Graphische Lehr-und Versuchanstalt 에서 공부할 때 회화와 그래픽 교육을 받았으며 그 기간 동안 종교 예술에 심취해 있었다.

작가는 렘브란트(Rembrandt, 1606 ~ 1669)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틴토레토(Tintoretto, 1518 ~ 1594), 엘 그레코(El Greco, 1541 ~ 1614) 의 종교적 회화에 영향을 받았다. 특별히 니치는 신화의 주인공 ‘디오니소스’에 매료되었다. 디오니소스는 연극의 신이며 포도주, 엑스터시, 도취, 풍요의 신이기도 하다. 신화에서는 인간은 선하고 악한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가장 사악한 모습을 특별한 정화 과정을 통해서 사라지게하면 선한 모습만 남게 되어 디오니소스가 된다. 이러한 신화의 이야기가 카톨릭의 종교적인 부분과 만나서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투영시키는 작업을 전개한다.

 

1957 이후 환락의 묘사나 종교적 의식은 그의 작품성을 드러내는 특징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니치가 세상에 알려진 퍼포먼스는 ‘Orgien Mysterien Theater’이다. 작가와 그의 동료들이 동물의 시체에서 피를 모아 뿌리거나 흘리고 그것의 내장을 의식적인 방법으로 드러내어 파격적인 행위를 선보였고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은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이 되어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 천이나 붕대 또는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들은 작가에게 예술을 표현하는 하나의 장치가 되었다. 행위 예술뿐만 아니라 회화 ‘튄 자국’은 작가의 인간성 또는 인간성에 대한 중립적 관점이 투영된 작품이다. 특히 니치의 회화 작품은 행위 예술의 한 부분 또는 전체를 대변하기 때문에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소장하게 된다.

 

 

Malaktion, prinzendorf, Zaya, 1989, 200x300cm

 

 

집중적 삶의 제식을 통한 6일간의 유희에서 얻은 경험은 전체 삶으로 퍼져나가야 한다.

광란의 ‘비밀 축제’는 강렬한 삶과 존재를 경험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삶의 과정이 미학화, 제식화는 유희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삶 자체, 일상생활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축제와 제식이 되어야 한다.

 

text by Hermann Nitsch

 

 

 

 

유투브에 공개된 영상을 통해 그의 전위예술을 감상 할 수 있다.

 

제목 : Bloodlines: The Paintings of Hermann Nitsch

           https://www.youtube.com/watch?v=4oxg2v4117o

 

 

 

다음은 헤르만 니츠의 글 중에서 발췌했다. 어떤 평론글 보다 명확하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한다.

 

우리 삶의 형성, 미학적 제식화는 전체 미술작품의 결과를 가져온다. 현실 영역을 다룰 줄 아는 미술은 실제 삶의 진행을 배열하고 압축할 수 있다. 삶 자체가 미술작품이 되고 미학적으로 승화되며 형태는 삶을 축제도 만든다. 인간의 인체, 정신적-육체적 조직, 감각은 문명의 질서에 의해 결정된다.

예술은 평범한 삶을 뛰어넘기 위해 필요하다.

미술은 모사성을 극복하였다. 모든 것이 연극이다. 프린첸도르프의 성은 ‘광란의 비밀 축제’의 이상적인 공연 장소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나의 연극적 행위는 축제가 된다. 금욕적인 종고에 의해 부정되는 육체적 창조의 행위는 죄의 요인으로 치부되거나, 고통으로 가득 찬 공연으로 이해되지 않고 축제가 된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상황, 우주의 존재를 축하한다.

지각과 경험의 장소가 되어 감각의 축제가 거행된다.

삶이라는 예배의 음악으로 가득 찬 화려함에서 천체와 우주는 울려 퍼진다.

존재는 존재만으로 축제에서 빛난다.

삶은 사계절의 충만함과 화려함 속에서 승리의 환호로 상승한다.

- 1981년 헤르만 니치의 글 중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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