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WA Lab] Künstler 07 -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August 24, 2017

 

 

 

프랑스 조각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은 파리에서 출생하고 뉴욕에서 31세까지 생활했다. 이후 1951년 파리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작가는 보그, 라이프, 엘르 등에서 사진 모델을 할 만큼 매력적인 외모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11살 즈음에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온전한 성장기를 보내지 못하고 전학과 자퇴를 되풀이하게 된다. 이후 20대까지 지속적인 신경쇠약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남성에 대한 혐오와 공포로 내적인 치유와 안정이 절실했던 작가는 미술을 치유의 수단으로 삼았다.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예술가가 되었다. 나는 어떤 결단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나의 운명이었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아마 평생을 정신병원에 격리된 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짧은 기간만 정신병원 신세를 졌고, 열 번의 전기 쇼크면 충분했다. 나는 예술을 나의 구원으로 그리고 필연으로 얼싸안았다.” - Niki de Saint Phalle

 

 

이 시기에 니키는 물감을 채운 총으로 인형을 쏘면서 인간에 대한 적개심과 <슈팅 페인팅> 시리즈로 발전시켰다. 자신이 개발한 총으로 부권에 대한 공격과 예술적 전통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이러한 ‘쏘는 행위’는 작가스스로가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되기위한 노력과 일치한다.

 

 

“1961년에 나는 총을 쏘아댔다. 아빠, 평범한 남자, 위대한 남자, 중요한 남자, 뚱뚱한 남자, 그냥 남자, 내 오빠, 사회, 교회, 의회, 학교, 내 가족, 내 엄마, 나 자신을 향하여, 모든 남자들을 향하여. 나는 쏘았다,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주 끝내주는 감정을 주기 때문에. 나는 그림들을 죽여버렸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이었다. 희생자 없는 전쟁이었다.” - Niki de Saint Phalle

 

 

 

프랑스 파리, 1961년, 슈팅 페인트

 

 

프랑스 SOISY, 1965년, 슈팅 페인트

 

 

니키는 같은 시기에 여성적 역할만을 강요당하는 <창녀>를 표현한 작품을 발표한다. 창녀들의 육체는 사지가 절단되고 갈기갈기 찢겨져 캔버스 위에서 산산이 분해되어 있다. 남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위한 대상으로 전락한 창녀의 초상화이다. 이때부터 조그만 머리에 우람한 몸뚱이를 한 조각이 등장한다.

 

 

“나의 창녀들은 십자가에 달린, 희생된 여자들이다.” - Niki de Saint Phalle

 

 

 

altar schwarz,1962년,250x200x35cm

 

 Rote Hoxe, 1962~1963sus, 198x122cm

 

 

 

니키는 점차 불면증과 신경쇠약증세가 호전되면서 자신감 있고 행복한 여성상을 만들기 위해 임산부들과 함께 지내며 <나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신체를 과장 시키고 균형에 맞지않게 배치하면서 낙천적인 풍만한 여성을 표현했다. 나나로 대표되는 여성적 원형은 이 사회의 상징적 질서 안에서 여자의 위치를 유희적 방식으로 표현했다.

 

 

 

 

Tanzender Negernana,1965~1966년, 200cm

 

 

 

니키 스스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 작품은 예루살렘 빈민가의 놀이터에 설치한 10m 높이의 미끄럼틀이다. 세 개의 혓바닥을 가진 생물을 형상화한 <작품명:골렘>은 진흙에서 창조된 인간과 유사한 존재를 비유했다. 이 시기 조각들은 긍정적으로 바뀐 작가의 삶을 반영한다. 강렬한 색을 대비시키는 니키의 다색 화법(polychromy)은 도발적이며 유희적이다.

 

“탐구는 나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였다. 나는 성스러운 것을 찾고 있다.” - Niki de Saint Phalle

 

 

 골렘(Golem), 1972년

 

 

그녀의 작품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카발비오(capalbio)에 조성된 <타로 공원>이다. 그녀는 가우디의 구엘 공원에서 영감을 받아 20여년의 공사기간동안 혼신의 힘을 다했다. 타로 공원을 빛, 판타지, 환희가 넘치는 공원으로 만들기위해서 거울, 유리, 도기 등을 모자이크로 형상화하여 장식했다. 니키에게 타로 공원은 삶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난 뒤의 완전한 변화를 의미한다.

 

“타로를 통해서 나는 정신적 세계와 삶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난관을 극복하고 내적 통일과 낙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 Niki de Saint Phalle

 

 

타로 가든(tarot), 토스카나 카발비오(capalbio), 1979

 

 

예술이 삶이 되고 삶을 예술로 바꾼 니키는 공원이 정식 개관한 1998년 이후 5년동안 플라스틱의 독성으로 고생하다가 72세에 사망한다. 그녀의 모든 것을 내보인 역작을 남기고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위: Totenkopf 1988, gimpel fils gallery, London, 110x88x128cm

아래: Tetes aux Roues, 1988, 155cm 

 

 

참고: 소장품 및 파운데이션

독일 하노버(Hanover)에 위치한 Sprengel Museum에서 Niki de Saint Phalle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니스에 위치한 MAMAC(Musée d'art moderne et d'art contemporain)에 주요 소장품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티에 위치한 니키 자선예술재단(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NCAF)에서는 작가의 모든 저작권, 기록 보관, 작품등을 관리하고 있다. 또한 NCAF (http://www.ncaf.org/)에서 박물관 및 주요 소장품의 온라인 카탈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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