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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A PICK] 시즌3 -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 05 -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01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명성은 전세계적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를 지금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식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생존작가 중 가장 비싸게 작품을 거래하는 데미안 허스트, 영국 찰스 사치가 발굴한 YBA 작가들 중 가장 대표적인 작가, 실제 인간의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가득 붙여서 충격을 준 작가 등 끝없이 이슈거리를 만들어내며 돈을 긁어모으는 작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지금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그의 개인전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Treasure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이 반드시 놓쳐서는 안될 전시로 손꼽히며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처음 예술에 입문하게 되었던 계기와 학교 전시를 기획하게 되는 과정 등을 살펴보면 그는 처음부터 20대라고는 믿기 힘든 추진력과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만이 상상하고 있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언어가 아닌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표현하는데 다음과 같은 지점이 남들보다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만의 추상적인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점’, ‘이를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여 현실화 시킨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려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 말은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지침서에 나오는 식상한 문구와 같지만 데미안 허스트 다큐영상을 보면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왔는지를 알 수 있다.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예술을 차용하고, 이 예술체계가 남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발전할 수 있게 지금까지도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1995년 터너 프라이즈 수상이 이름을 알리는 수단이 되었을지 몰라도 수상 자체가 작가로서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늘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예술학교 골드스미스(Goldsmith’s)에 입학하게 되는 계기와, 학교입학 후 개념미술의 매력에 빠져 제작한 첫 작품‘스팟 페인팅(Spot Painting)’ 소개를 시작으로 총 3주 간 그의 다큐멘터리 영상 자막을 소개한다.

* 참고: 데미안허스트는 공식적으로 이 동영상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트와는 데미안허스트 내부 팀과 동영상에 한글자막을 삽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조율 중이며, 최종 완성된 자막이 동영상에 담겨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자막을 텍스트로 공개한다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동영상 링크로 연결됩니다.

Damien Hirst: Thoughts, Work, Life (2012)

© Drop Out Pictures/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2

지금 보는 이 해골 작품에는 8천6백여 개의 다이아몬드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작품가는 얼마인가요? 결국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해골은 얼마정도 하죠? 이 작품의 시가는 얼마죠? 생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인 것이 사실인가죠? 모르겠어요. 작품을 위해 다이아몬드를 당신이 모두 구입했나요? 5천만 파운드(약 660억원)에 작품을 판매한 것이 사실인가요? 4천만 파운드(약 530억원)어치의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넘 소재로 만들어졌죠. 뭔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00:01:00] 어떤 작품이던, 혹은 행위이던 그것에는 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해가 되는 어떤 이유가 있죠. 이는 아이디어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나타나죠. 무엇을 의미하는지가요. 예를 들면 사랑한다는 표현은 언어 혹은 행위 없이 사물을 통해 어떻게 표현할까요? 저는 이것이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00:01:30] 하지만 잘 하지 못했죠. 공허함처럼, 무한히 가능성을 내표한 다양한 것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아팠죠. 사람은 여기, 차는 저기, 그리고 나무는 다른 곳에 배치하는 생각을 하다가… 저는 종종 어찌할 줄 몰랐죠. 그래서 저는 자주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화가가 꿈이었던 것은 순수한 것이라 생각해요. 유명해지고 싶다던가, 돈을 바라는 것은 올바른 꿈이 아니라고 봐요. [00:02:00] 꿈이라는 것은 아이디어이고 그림은 그 꿈을 표현하기에 좋은 도구이죠. 저는 런던으로 이사했고, 친구들과 함께 지냈어요.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친구들도 궁금해하지 않았죠. 일용 노동직으로 돈을 벌었어요. 돈이 필요해서 단순히 일을 구했던것 같아요. 현장의 한 사람이 내 옆에 와서 이름을 물었어요. '데미안' 이라고 답했더니 그리 부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들네임(middle name)이 있는지 되물었어요. 그래서 '스티브'라고 대답했더니, '스티브, 넌 월요일부터 나와' 그 이후로 2~3년 동안 스티브로 불렸던 것 같아요. [00:02:30] '리키'라는 사람와 지냈던 시간이 기억나요. 그는 미장공이었죠. 팔이 엄청 굵고 침을 자주 뱉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점심으로 차가운 스터핑된 황소 심장을 먹었어요. 마치 사과를 사먹는 것처럼요. 그때 저는 '난 이사람들과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죠. 나는 아티스트이고 이를 위해 뭔가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리고 바로 일을 그만뒀어요. 화이트하우스레인역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친구들이 생겼죠. 제 방에서 그림을 그리면 그러면 미술대학에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00:03:00] 그당시 제 방의 벽을 통해 옆집 아저씨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그가 반스아저씨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가 카트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물건들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호더(Hoarder: 특정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집에 쌓아두는 사람) 였어요. 언제부턴가 벽 너머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약 일주일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죠. 친구들한테 옆집에 가보자고 말했어요. 옆집 문을 부스고 들어갔어요. 그 집은 온통 잡동사니들이 쌓여있었죠. [00:03:30] 잡동사니들이 쌓여서 하나의 형상이 되어있었고 아주 좁은 통로를 통해 걸어다닐 수 있을 뿐, 물건들이 천장까지 쌓여있었어요. 2주정도 천천히 그곳을 발굴했어요. 그의 물건들을 말이죠. 이는 저의 예술적인 영감을 넘어 제 인생에 가장 강렬하게 영향을 준 사건이었을 거에요. 물건에 날짜가 젹혀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그 방에는 그의 60년 세월이 담겨있었던 거죠. 마치 껍데기를 벗겨내는 것처럼 쌓여있는 물건 꼭데기서부터 뒤지기 시작했어요. [00:04:00] 가방을 열어보기도 하고 물건들을 뒤졌죠. 책, 잡지 등.. 그의 수집품들을 봤어요. 무덤에서 가져온 두상이나 조각상, 다 쓴 치약 통으로 가득찬 가방... 60년 동안 그는 어떤 것도 버리지 않고 쌓아놓았던거죠.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제 스튜디오로 가져갔어요. 그리고 그것들로 꼴라쥬 작업을 했죠. 가지고 있던 페인트도 같이 사용했어요. 제 작업이 된 것이죠. [00:04:30] 자유로운 상황 속에서 스튜디오에 있으니 많은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끊임없이 작품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죠. 이 꼴라쥬들은 조각 같기도 하고 회화 같기도 하고, 그 경계가 애매해서 제가 조각가인지 화가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때 골드스미스 학교를 알게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유일하게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예술학교였죠. 그 외의 모든 학교는 회화 혹은 조각을 선택해야했어요. 그래서 에술학교가 아니라 '골드스미스'에 가야겠다고 결정했어요. [00:05:00] 골드스미스를 다니던 시절에 괴짜들이 몇명 있었죠. 선배였던 게리 흄(Gary Hume)은, 제가 생각했을때 굉장했던 병원 문(Hospital doors)을 그렸고, 저는 냄비에 색을 칠하고 있었어요. [00:05:30] 저는 리즈(Leeds) 출신인데 그곳은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던 곳이었죠. 감정의 표현이 전부였어요. 대화할 필요도, 글로 쓸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하루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죠. 하지만 이 학교 교육의 방침은 달랐어요. 작업에 대한 모든 것을 증명해야 했죠. 그 당시 예술계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은 참으로 매력적이었어요. 미니멀리즘은 과학같죠. 질서와 무질서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무질서는 마치 추상 표현주의이고 [00:06:00] 미니멀리즘은 질서이죠. 완벽한 질서와 같아요. 개념미술의 기초는, 예술이란 작품(objects)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의 생각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에요. 작품 그 자체는 무언가를 유발시키는 매게체인 것이죠. 그 무언가가 바로 예술이에요, 개념미술인 것이에요. 선생이었던 마이클 크레이그(Michael Craig-Martin)는 개념미술 작가였어요. 그는 굉장한 작품 '참나무(Oak Tree)'를 만들었죠. 이 작품은 물 한잔이 선반에 놓여져 있고 글이 쓰여져 있는데, 이 작품은 물 한잔이 아닌 참나무라는 것이었어요. [00:06:30] 보여지는 대상의 의미를 뒤집는 작업이었어요. 저는 개념주의, 개념미술에 빠져들었어요. 제 작업은 과거의 것이라는 것을 깨닳았죠. 꼴라쥬로 작업을 하면서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하는 저는 허황된 생각을 하고있었던거죠. 바닥을 보면서 나무를 주우며 세상을 생각하던 저는 알아차린 것이죠. 광고, TV 등으로 가득찬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저는 뒤쳐져 있었어요. 결점을 발견한 순간이었어요. [00:07:00] 그 지점이 저에게는 전환점이었어요. 골드 스미스를 다닌지 첫 해에 있었던 일이었어요. 그리고나서 처음 선보였던 작품은 스팟페인팅(spot painting) 이었지요. 과거를 철저히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첫 출발이었어요. 저의 예전 회화작업들을 가지고 두 명의 대학 동기들이 굉장히 멋진 커텐을 디자인했던 것이 기억나요. 그래서 저는 제 회화의 문제점을 발견했지요. [00:07:30] 저는 색을 너무 사랑했다는 거에요. 하루종일 색을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였어요. 이론적인 부분은 약했어요. 상징하는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색 자체에서 오는 힘이 있었고, 그랬기에 커텐디자인처럼 보였던것 같아요. 저는 항상 한 가지 결론으로 다다르기 위한 방법은 무한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디어를 상대방에게 어떻게 표현(language)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00:08:00] 아이디어는 언제나 무형인 상태이기 때문에, 이 스팟페인팅이라는 구조를 창조했어요. 일정한 간격을 가진 점들의 무한대 나열이죠. 크기차이가 조금 있을 뿐, 제가 원하는대로 색을 가지고 놀 수 있었어요. 어느 벽이던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어요. 이는 저를 다른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줬어요. 상징체계, 메타포... 그 어떤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죠. 그저 색을 끝없이 칠하기만 하면 되었어요. 제 머릿속에는 화가가 있었어요. 마치 상상속에 존재하는 개념미술가가 된 것 같았죠. 하지만 기계에 더 가까운 화가였어요. [00:08:30] 그 당시 저는 끝없는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개념미술에 빠져있었어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끝없이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너무 좋았어요.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의 '백색 회화', 댄 플래빈(Dan Flavin)의 형광등 작품들 처럼 말이죠. 솔 로윗(Sol LeWitt)도 그런 작가 중 한명이었죠. 그는 작품을 만드는데 여러가지 시스템들을 만들고 메뉴얼 같은 자료를 만들어서 누구나 쉽게 따라하여 작업이 이어질 수 있게 했어요. 영원히 말이죠. 스팟페인팅은 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작품이고, [00:09:00] 무한성, 불명성과 관련된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는 무한한 시리즈로 해야한다고 결심했죠. 한 때는 심지어 모든 것을 관두고 이 작업만 할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만약 정말로 다 관두고 이것만 했다면 굉장한 커리어가 만들어졌을 거에요. 하지만 이는 제가 하는 작업의 한 부분일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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