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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A Lab] Künstler 01 - 토마스 비르니히 (Thomas Virnich)


예술가들은 유일한 것, 창의적인 것, 아름다운 것, 가치 있는 것 등을 이야기 할 때 ‘나의 작품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더 이상 특이한 기법이나 시각적인 자극 또는 하나뿐인 유일한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그 무엇을 공유하기에 예술가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뒤샹의 질문처럼 ‘미술 작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ARTWA는 이러한 해답을 찾고 있는 작가 분들을 영상과 자료를 통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ARTWA는 이러한 해답을 찾고 있는 작가 분들을 영상과 자료를 통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소개할 바르니히는 공간을 조각의 몸체로 보는 특별한 개념을 던진 작가이다. 그의 획기적인 조각에 대한 개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로 가득하지만 작가의 끈질긴 노력으로 구체화되었다. 그의 노력의 흔적들을 소개한다.


토마스 비르니히 (Thomas Virnich)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사물은 그것을 창조해낸 자의 본질과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나는 나의 불완전성 안에서 세계를 내 것으로 하겠다. 세계는 나의 작은 혹성보다 응용이 훨씬 더 잘 된다.

나는 나의 현실을 나를 위해 창조한다.

내 작품들은 어디에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작품들은 달리지도, 소리를 내지도, 날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상들과 쓸모 있는 대상들 사이의 거리는 나에게 입장을 취하게 하고, 보다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 _1983년 Thomas Virnich


다음은 독일 레버쿠젠(Leverkusen)에서 활동하는 미술비평가의 글을 발췌하여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글- 주잔네 베테베어(Susanne Wedewer)


창조적 원리로서의 파괴

작품들은 엄연한 수공업적인 형식 발견 과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의 작품은 개별적 부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고, 그와 더불어 구조를 짓고 질서를 부여해야 하는 필연성이 아울러 탄생한다.

공간에 대한 사물들의 관계, 사물끼리의 관계, 관찰자에 대한 사물들의 관계들이 새롭게 정의 내려진다고 할 수 있다.

긍정과 부정의 변화, 평면과 부피의 변화, 내부와 외부의 변화는 당연하게 연결되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전체 형식의 통일성은 이러한 조화가 이루어낸 성과이다.

그의 작품 즉 몸체는 내부 형식과 외부 형식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조각은 속이 채워진 공간

‘몸체’로서 이해된다.


1. 형식을 변화시킴

예술의 경계는 예술에 있어, 예술을 정의 내리는 데, 또 예술을 이해하는 데 필연적이다. 비르니히는 세부적인 면까지 하나하나 경계를 지워 없애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그가 사용할 줄 아는 수공업 도구를 재료와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들을, 그리고 하나의 전체적인 창조 과정의 가능성들을 늘 따랐다.

인간 내에 있는 창조적 잠재성에 대해 그가 갖는 희망은 우선 ‘유희적인 것’에서 세계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그 표현을 발견한다.


2. 조각의 주제로서의 공간

나는 내 안에서 내 작품들을 성장시키고 싶은 흥미를 느끼고. 그 작품들의 차원을 확장 시키고 싶다. _1988년 Thomas Virnich

3. ‘신사실주의(New Realism)’, ‘오브제 트루베(objet trouve)’

토마스 비르니히의 작품에서 특히 ‘개념’들은 항상 접근 과정에 있는 보조 수단이며, 대화중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지점들이다. 창조 과정에 대한 예견이 인간에게 고유한 것으로, 인간이 세계에 대해 갖는 관계에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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