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WA Lab] Künstler 10 - 메렛 오펜하임 (Méret Elisabeth Oppenheim)

October 12, 2017

1913년 독일 베를린 출생 ~1985년 사망(72세)

교육: 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 Basel School of Arts and Crafts

 

 

 

 

 

예술은 삶의 자세다. - Méret Oppenheim 

 

 

 

메레 엘리자베스 오펜하임 (이하 오펜하임)은 1920년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등과 함께 초현실주의 운동의 일원이었다. 당시 사진작가 만레이(Man Ray)는 특별히 그녀를 모델로 다양한 누드 작품을 촬영했고 그 사진은 현재 가장 유명한 만레이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오펜하임의 아버지는 유태인으로 독일에서 의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작가는 아버지의 절친이었던 칼 구스타브 융 (Carl Gustav Jung)에게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위대한 정신의학자와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오펜하임의 작업은 이때부터 꿈과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1차 세계대전으로 아버지가 육군에 징집되면서 스위스 출신인 어머니는 딸과 함께 스위스로 이주하여 생활한다. 오펜하임은 스위스에서 성장하고 공부하면서 그녀의 숙모 루스 벵거(Ruth Wenger - 헤르만 헤세의 두번째 부인으로 헤세와 3년이라는 짧은 생활을 함께 했다.)에게 예술과 현대 생활에 대한 영감을 받게 된다. 어쩌면 특별한 가정 환경 속에서 예술을 접하고 그들과 자연스러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오펜하임은 193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가장 먼저 프랑스에서 전시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작가는 한스 아르프 (Hans Arp)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이다. 그들의 추천으로 1933년< Salon des Surindépendants >전시에 참여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앙드레 브르통 (André Breton)을 만났고 마르셀 뒤샹(Marchel Duchamp),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프란시스 피가비아(Francis Picabia)의 미술에 대한 개념적 접근에 깊은 영감과 영향을 받게 된다. 이후 22세의 젊은 오펜하임은 ​​Schulthess 갤러리 (스위스, 바젤, 1936년)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독창적이면서 대담한 작품을 선보였고, 작가의 모델같은 외모와 인간적인 매력은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역으로 만들었다. 

 

 

 

 

Meret Oppenheim. Object, 1936. Fur-covered cup, saucer, and spoon, cup 4-3/8 inches in diameter; saucer 9-3/8 inches in diameter; spoon 8 inches long, overall height 2-7/8" (The Museum of Modern Art)

 

 

 

오펜하임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Breakfast in Fur>가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계기는 피카소에게 있다. 피카소는 털로 장식된 그녀의 팔찌를 우연히 보고 모든 물건에 털을 입히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마침 초현실주의 전시회 출품작을 고심하고 있던 작가는 곧바로 값싼 컵, 잔, 스푼을 사고 그 위에 중국산 영양 털을 덮어씌웠다. 이렇게 출품된 작품을 앙드레 브르통은 일상적 물체의 본질적 기능을 박탈해 버리는 즉 상식에 대치되는 생각을 극찬하며 <털 속의 점심 식사>라는 제목을 지어주었다. 실제로 부드럽고 특별한 이 작품은 미술의 역사를 만들었고 얼마 후 뉴욕의 현대 박물관이 소장하게 된다. 이 작품은 ‘아이디어’는 피카소로부터 ‘표현’은 작가가 그리고 ‘의미 부여’는 앙드레 브르통이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36년의 첫 개인전을 계기로 작가는 진정한 예술가로서 발전하기위해서는 그림에 완성된 형태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후 파리를 떠나 바젤에서 복원 기술자로 실업학교에 다니면서   작가가 원하는 형태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습득했고 그림 뿐만 아니라 콜라주, 스크린 날염, 동판화, 조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오펜하임을 위대한 여류 예술가로 만든 것은 자신의 꿈을 회화적으로 정밀하게 완벽한 형태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과 정령의 형상, 나무, 구름, 동물 등은 조화롭고 율동적인 구성과 색으로 표현했고 나무, 돌, 종이의 재료를 변형하여 예술적 창조물로 바꾸어 놓았다. 

 

 

 

예술적 창조는 언제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다. - Méret Oppenheim

 

 

 

위_DIE HAND DER MELANCHOLIE, 1943, 30.5x22cm

아래_ANTILOPE MIT SONNE AUF DEM RUCKEN, 1949, 24.5x33.5cm

 

 

위_STEINFRAU, 1938, 59x49cm

아래_DAS LEIDEN DER GENOVEVA, 1938, 49.5x71.5cm

 

 

 

 

위_DAS PARADIES IST UNTER DER ERDE, 1940, 22x16.5cm 

아래_HM-HM, 1969, 200x95x9cmm o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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