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WA Lab] Künstler 06 - 리처드 해밀턴 (Richard Hamilton)
대충 관찰하게 되면 나의 팝-이전-그림들은 ‘추상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실제로 나는 사람의 형상이 내게 극히 강렬하게 의식되지 않은 채로 그림을 그려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초기의 내 작품들의 경우 나는 주로 인간적인 배치에 (두 눈은 움직이는 두 다리로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치한다) 관심을 두었다. 그림과의 대면이 그 구성을 결정한다. 인간 형상은 그림 요소들의 질서를 위한 전제가 된다. 그림과 관람객에 대한 관계는 이로써 확정된다. 인간 형상의 묘사는 그림과 목격자(관람객) 사이의 대화를 넓혀준다는 인식을 이루어 놓았다. 이것은 예술 작품이 관중이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진부한 말의 정직한 표명이다. 나의 후기 작품들은 외부 세계를 향한 관계를 더 추가하였다. 관람객이 바라보는 인간은 그것이 인위적이든 아니면 실제이든, 항상 그 안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감동적인 인상이 된다.
<“인간 형상의 그림이 당신의 작품에서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떤 비중을 차지합니까?”라는 1971년 요시아키 토니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내놓은 진술>
-text by Richard Hamilton


1922년 영국 런던 출생 ~ 사망 2011년 (89세) 영국 런던
Royal Academy Slade School of Art University College, London
해밀턴은 전기 부품 회사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Saint Martin's School of Art에서 야간에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1938년에는 Royal Academy of Arts에 입학했고 2년 동안 현대 미술 연구소 (International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ICA)에서 포스터와 전단지도 제작했다.


위 : re nude, 1954, 122x91.5cm
아래 : hommage a chrysler corp.,1957, oil,metal and collage, 122x81cm
1950년대와 1960년대 해밀턴의 초기 작업은 톰프슨(D'Arcy Wentworth Thompson-생물학자)의 생물들의 형태를 통한 계통과 성장에 관한 <on growth and form> 책을 통해서 그것을 텍스트화한 모든 것들로부터 예술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1946년에 설립한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와 해밀턴과의 관계는 1952년부터 시작된다. 특히 1956년 해밀턴이 발표한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는 당시 다양한 비평을 통해서 팝아트의 역사적 시발점을 알리게 되었다. ICA의 지부장은 그에게 Duchamp의 그린 박스(Green Box) 디자인을 의뢰했고 1960년 출판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해밀턴이 뒤샹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뒤샹에게 엄청난 예술적 영감과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ICA에서 James Joyce, The Wonder, Penrose가 기획한 ‘Human Head의 공포‘ 전시회를 비롯하여 여러 전시회의 디자인 및 설치를 담당하기도 했다.

just what is i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so appealing, 1956, collage, 26x25cm
1955년 Newcastle의 Hatton Gallery에서 Man Machine Motion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이 전시회는 일반적인 미술전시의 형태가 아니고 광고 디스플레이처럼 보이도록 구성했다.
1957년 해밀턴은 팝아트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팝 아트는 인기가 높고 일시적이며 저렴하고 대량 생산되고 젊고 재치 있고 섹시하며 눈부시게 화려하고 매력적이다.’ 따라서 그는 일상적인 평범한 가치관에 중점을 두면서 대량 유통 신문과 잡지의 광고를 통합 한 콜라주 작업을 시작했다.
해밀턴은 1960년대 초부터 "영광스러운 테크니컬러 (Glorious Technicolor) 및 놀라운 시네마 스코프와 입체 음향"이라는 강의를 진행하며 헐리우드 영화의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필름 스틸 컷과 홍보 촬영 등에 적극적으로 회화를 접목시켰다. 1969년 해밀턴은 영화 제작자 인 제임스 스콧 (James Scott)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했다. 연이어 1960년대 런던에서는 롤링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믹 재거(mick jagger)가 마약 중독으로 체포된 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작업했다. 이 작품으로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친구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비틀즈의 앨범 커버와 포스터를 디자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작업으로 해밀턴은 당연히 대중적인 명성도 함께 얻었다.



위부터_
믹 재거의 마약 중독으로 체포된 사진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1967~1968, oil, leinwand, 106.5x160cm
interior i, 1964, oil, collage, 122x162cm
이후 그는 예술작품, 산업디자인, 제품디자인, 사회참여,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색적인 작업 중 하나는 영문학사상 가장 독특한 소설 <율리시스- 저자: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삽화를 제작한 것이다. 율리시스는 신화와 현대를 결합하고 사회와 영혼을 묘사하며 정신과 육체의 중간에 놓여있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당시 작가가 지향하는 예술적 가치관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해밀턴은 1947년부터 이 복잡한 소설을 이미지로 구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었다고 한다. 2002년 해밀턴은 대영 박물관에서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의 율리시스 일러스트레이션 ‘Imaging Ulysses‘전시를 가졌다. 또한 해밀턴의 삽화와 대영박물관 큐레이터 스티븐 코펠(Stephen Coppel)의 글과 함께 출판되었다. 본 전시는 율리시스 저자인 제임스 조이스 소설 발간 80주년과 리처드 해밀턴 탄생 80주년을 기념하여 열렸다.

Richard Hamilton
English, 1922 - 2011
Finn MacCool, from Imaging Ulysses, 1983
© 2017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DACS, London
팝아트를 대표하는 로이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과 앤디 워홀(Andy Warhol)처럼 한국에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20세기 후반 전 세계는 대중문화의 급격한 발전으로 이미지 홍수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회화를 지속적으로 선보인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위부터_
lux 50-functioning prototype, 1979, aluminium, zellstoff, 100x100cm
mother and child, 1984~1985, oil, leinwand, 150x150cm
lobby, 1985~1987, oil, leinwand, 175x250cm
the citizen, 1982~1983, oil, leinwand, 200x100cm, tate gallery
[그림 공간의 정의]
해밀튼에게 매체에서 발견된 정보와 외관 사이의 괴리는 그의 작업을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이 자신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를 관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성이 여기에 함께 개입해 들어온다. 몇몇의 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해밀튼에 의해 다루어진 외관 모두가 고정된 공간 구조 내에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점이 특히 눈에 뜨인다. 본래 주재 외에, 하나의 공간이 그 시각적 구조로부터 어떻게 느껴지게 되는가 하는 분석이 그 속에서 밀려오는 일련의 작품들이 존재한다(사진 4, 10, 13, 20). 이것은 작품에 고유한 평면성이 공간의 벽들을 통해, 벽에 걸려있는 그림이나 솜씨 있게 연출된 거울 평면을 통해, 설치물들에 전개되어 있는 관조적 공간성과 교체하게 되는 영원한 유희로 남는다. 이것은 입체주의에 불균형적인 고유의 그림 공간 정의를 낳게 되고, 그림 공간은 이제 공간으로서, 더 큰 맥락의 한 단면으로서만 구현된다.
새로 인지되고 항상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대한 리차드 해밀튼의 예술적 성찰이 방법으로 이해된다면 이는 팝 아트의 시작을 위해, 대중 예술 안에서 발견된 현실을 상위의 인지 과정과 조작 과정 속에 투명하게 만들려는 해밀튼의 개인적 목표 설정 속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목표 설정을 함으로써 해밀튼은 그림 주제를 위해서 특수한 양식 규범을 거부했고, 그것은 동시에 이런 방법을 또 다시 제한했다. 지난 20세기에 예술의 강한 방향 전환을 무시한 채 그는 자신과 팝 아트를 위해 특성화하는, 예술가에 연결된 양식의 다양성을 열어두었다.
- text by Wenzel Jakob (저자는 다큐멘트 8의 매체 코디네이터이며, 미술 비평가로 쾰른에서 살고 있다.)

towards a definitive statement on the coming trends in men's wear and accessories together
let us explore the stars, 1962, oil,collage, 61x81cm, tate gallery
Collections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 리차드 해밀턴의 작품을 종합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중
-빈터투어 미술관 (Kunstmuseum Winterthur): 1996년 해밀턴 작품을 기증받은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해밀턴의 소장고를 만들었다.
Art market
2006 년 2 월 런던의 Sotheby 's London에서 설정한 44만(GBP) 파운드 (약 6억 5천만원)
전시 정보
2017, 2018년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리처드 해밀턴’의 전시가 열린다. 전시 기간 : 2017.11.03. ~ 2018.01.2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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