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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A PICK] Künstler 15 - 전경선

전경선은 서사적이고 문학적인 조각가이다.

고충환 미술평론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란 없다. 무엇으로든 채워지기 마련이다. 필자는 빈 공간에는 공기와 에너지 그리고 그것들의 기류가 무형의 형태로 펼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공간에는 보이는 것만으로는 유추할 수 없는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전경선 작가는 공간에 ‘기억’을 담아 다른 차원의 경계를 만든다. 그녀가 주장하는 <투명한 공간>은 바로 인간의 가장 순수했던 기억을 담는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위_파티 가변크기 Painting on Almaciga wood 2012

아래_가을의 기억 가변크기 Painting on Almaciga Wood 2012

전경선 작품의 특징은 ‘개방성’에 있다. 이는 마치 독립된 세계가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감상자로 하여금 우연히 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끔 한다. 흡사 영화의 시놉시스(synopsis)를 대하듯 작가의 주관이 뚜렷하게 드러남과 동시에 작품의 주제, 의도, 인물, 줄거리가 구체적으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낮지 않다. 작품 속 인물들은 현실이 아닌 이상의 세계에서 존재론적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특별히 작가는 부드럽고 섬세한 부분을 표현하기위해 나무를 선택했다. 나무는 가볍고 묵직한 느낌을 모두 소화 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작가에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또 다른 소재이기도 하다.


작품의 의도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료하게 하는 알고리즘인 개방성과 더불어 평면적인 것에서 깊이 있는 것으로의 전이 또한 전경선 작업의 특징이다. 입체감과 더불어 공간적 심도야 말로 오랜 시간 아래 터득하는 점진적 과정을 동반하고 있다. 고전적인 조각처럼 경직되고 판판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유동적인 형태로의 변화는 자유로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공간을 장악하는 형상과 각각의 스토리가 오버랩 되면서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며, 이는 형상 너머의 세계이자 그녀가 상상하는 꿈의 공간으로 타자를 인도한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말하는 ‘꿈의 공간이란 무엇인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에게 있어 꿈의 공간은 과거 순수했던 유년 시절의 투명한 ‘기억의 수장고’를 가리킨다. 이 수장고는 그녀 작업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올 한 올 실을 뽑듯 그 공간에서 창작의 미감을 끌어올린다. 즉, 그녀의 수장고로부터 알음알음 새어 나온 기억의 파편들이 현실과 상상이 버무려진 공간에 놓임과 동시에 시각적 표상에 대한 언어적 표상으로의 공간이 되고, 이를 통해 환유(換喩)의 공간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환유의 공간은 가상의 공간, 무형의 공간, 사유의 공간일 뿐 현실의 리얼리티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Transparent memory 90x43x10cm Painting on Almaciga wood 2017 (Detailed)

기억에 잠시 머물다 100x70x30cm Painting on Almaciga wood 2009

전경선의 작업은 유년의 기억과 재생, 현재로 소환한 정신적 기록의 환유의 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진정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라고 되묻는다. 이러한 자문자답은 사람들 내면에 감춰진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관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세계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나침반을 제시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 모두는 과거를 망각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작가 스스로도 잃어버린 시간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기억’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예술가의 삶이 다 그러하듯 그녀가 개척하는 길이 그리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녀의 작품이 본질에 대하여 효과적이며 명료한 형태를 부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상자의 관계 속에서 판단될 것이다.

Lighthouse Drawing 2017

Lighthouse Painting on Almaciga wood 2017

이제 20년 동안 기억을 반추하는 작업은 또 다른 양상으로 발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전경선의 작업은 회화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회화와 부조의 조화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며 환조를 통해서 이야기를 현실로 드러내려고 한다.

외부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은 내면 세계의 일인칭 화자인 전경선의 시각을 통해 철저하게 걸러진다. 이러한 과정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생의 단계마다 함께 할 것이라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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