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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A PICK] 시즌3 -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 05 -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02

* 데미안 허스트의 다큐멘터리 20분까지의 자막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20대 데미안 허스트는 어떻게 작품세계를 발전시켰을까요?

10분부터 20분까지의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는 골드스미스 시설 기획한 프리즈(Freeze) 전시, 파리(Thousand Years), 약국, 나비 시리즈… 그리고 상어 작품까지 데미안 허스트의 대표작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작품제작을 하게 된 계기와, 제작 당시의 어려움 등을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 새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 데미안 허스트

* 참고: 데미안허스트는 공식적으로 이 동영상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트와는 데미안허스트 내부 팀과 동영상에 한글자막을 삽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조율 중이며, 최종 완성된 자막이 동영상에 담겨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자막을 텍스트로 공개한다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동영상 링크로 연결됩니다.

Damien Hirst: Thoughts, Work, Life (2012)

© Drop Out Pictures/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2

[00:09:23]

저는 안소니 도페 갤러리(Anthony d'Offay gallery)에서 일을 했는데,

일주일에 삼일 동안 일을 했어요.

멋진 작품들 사이에서 일을 했어요.

그때 충격받았던 것 같아요, '나는 골드스미스에서 뭘 하고 있었던거지?'

정말 많은 작품들이 있었죠, 멋진 작품들이요.

[00:09:30]

어느날 작품 옆에서 저는 생각했죠,

학교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이런 몇 안되는 갤러리에 속할 사람은 정말 극소수일 것이라고요.

우리만의 쇼를 하기로 마음먹었죠.

(사라 루카스(Sara Lucas))

데미언은 지인들에게 쇼에 참여할지 물었어요.

하지만 단순히 전시에 참여하는것 뿐만 아니라, 전시장소를 찾는것 부터......

전시에 관련된 모든 것을 만들어야 했어요.

모두들 엄청 힘써야했어요.

[00:10:10]

데미안 허스트도 이 전시에 참여작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품뿐 아니라 장소선정, 조명설치, 도록, PR까지 전담하였습니다.

리차드 션(미학자), 노먼 로젠탈(큐레이터) 주요인사분들이 다 오셨죠. 갤러리 관계자 분들도 물론이고요.

학교의 반응은 어떤가요?

반반인것 같아요.

[00:10:30]

학교는 극명히 다른 두 가지로 나뉘어졌죠.

한 부류는 안티-프리즈(전시명)이고,

그 나머지는 환영의 분위기에요.

안티 프리즈인 사람들은 왜그런 걸까요?

저도 모르죠, 남의 성공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인 것 같아요.

프리즈 전시는 제가 원하지 않는 책임감이 많이 따랐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저는 단지 큐레이터였는데, 일이 시작되자 저를 아티스트로써 진지하게 봐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전시를 기획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저는 약상자(medicine cabinet)를 작품으로 출품했는데,

[00:11:00]

종이상자로된 작품을 보자니, 제가 아티스트로써는 정말 별로였던것 같기도 했죠.

심장을 후벼파는 사건이었어요.

저의 첫 약상자 작품은 부엌에서 탄생했어요.

약국에서 볼 수 있는, 제가 좋아하던 모습을 차용했죠.

약국에서 약선반을 보고 통째로 갤러리에 전시를 하고 싶었죠.

하지만 그대로 전시를 할 용기가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제프쿤스의 청소기(Hoover) 작품을 보았죠.

놀랐어요. '맙소사! 저렇게 해도 괜찮은거군!'

[00:11:30]

차용을 하더래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럴 필요가 없었던거에요.

과거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에는 빠져있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저는 그 지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저만의 것을 불어넣어 새롭게 만들고 싶었죠.

[00:12:00]

강박적으로 의미를 불어넣으려 했던 것 같아요.

또한 이해시키고 싶었어요.

예전에 건설현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 리즈에서 함께 지냈던 동료들에게 말이죠.

모든 인간은 엄청나게 놀라워할(wonder)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경이감을 느낄 수 있는게 예술 아닌가요?

저는 ‘생명의 주기’를 표현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00:12:30]

그리고 생각난 것이 ‘파리’에요, 작은 점 같기도한..

날아다니는 파리를 관찰했던 적이 있었어요.

정말 굉장한 미래의 조각품이라 생각했어요.

공중을 부양하는 작품 말이죠.

저의 작품구상은, ‘파리의 생명주기’를 보여주자는 것이었어요.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말이죠.

아이디어는 떠올랐지만, 어떻게 만들지는 또다른 이야기였지요.

그저 반드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죠.

돈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항상 고민이 많았어요.

첫 작업노트가 완성되었을 때 비용이 얼마나 들지 계산을 했어요.

볼트를 계산에서 빠트렸던거죠. 너트와 볼트요.

[00:13:00]

알고보니 비용이 상당했던거에요.

‘젠장, 왜 그것을 빠트렸지?’

천년(Thousand years,1990) 작품은 굉장했어요. 너무 만족스러웠죠.

평생 수십개를 만들어도 괜찮을 그런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에 저는 덧붙인 것이 아무것도 없었죠.

[00:14:00]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어요.

하나의 여정을 담고있어요.

매번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 지점이 진정 흥미진진했던것 같아요.

보시는 작품은 26세인 영국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는 수년 동안 시리즈로 제작된 작품이기도 하죠.

00:14:30]

미려하고, 장식적이며, 무난한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업과 상당히 대조됩니다.

악명 높은, 동물의 시체 작품 말이죠.

우리는 신나는 시대에 살고있었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래까지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당시 저는 브릭스턴(Brixton)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리고 미닛로드(Minite Road)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구했어요.

[00:15:00]

브레이커 야드(Breaker's Yard)에 있었는데 거기에는 끔찍한 개가 있었죠. 이름은 'fucker' 였어요.

그곳을 지나면 나오는 스튜디오는 7~8명의 아티스트가 모여있는 커뮤니티와 같은 곳이었어요.

캔버스에 밑칠을 할 때면 파리가 들러붙었어요.

그것을 보고 상상의 예술가가 또 머릿속에 나타났어요.

모노크롬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곤충들이 망치는 모습을 떠올렸죠.

그리고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거죠.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어요. 나비를 이용하기로 했죠.

[00:15:30]

곤충이 덜 마른 작품에 떨어지는 끔찍한 사건이 뛰어난 작품으로 바뀌는거죠.

설정은, 덜 마른 모노크롬 작품에 나비가 붙어서 망쳐버린 것이죠.

이후로 생각했어요.

캔버스에 있는 나비 고치가 작품에서 날아간다면, 이는 3차원적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있을것 이라고 말이에요.

작품의 표면은 말그대로 ‘나비의 서식처’로 만들었죠.

[00:16:00]

제가 원하는 예술이었어요.

살아있는 그림이 되었죠.

널리 통용되는 상징물을 저는 좋아해요.

나비가 좋았던 점은, 사실 나비는 상투적인 의미로 많이 상징화된 곤충이죠.

개념미술뿐만 아니라 리얼리즘도 같이 보여지는 작품을 원했어요.

왜냐하면 개념미술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죠.

[00:16:30]

리즈대학교 해부학과에 있는 영안실에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리즈에서 살 때 스케치 연습을 하기위해 들리기도 한 곳이죠.

친구들과 함께 갔는데 시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또한 박물관에서 포름알데히드에 담긴 표본들을 봤어요.

보자마자 이를 이용해서 진짜(real)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죠.

이전 약국 시리즈처럼, 리즈에서 본 표본 병들을 선반에 진열하는 전시를 생각했어요.

[00:17:00]

리얼한 작품이 되는거죠.

그 첫 작업은 생선을 소재로 만들었어요.

좋았던 점은 생선이 생존하는 물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데미안 허스트 어머니)

아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 작품을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00:17:30]

제 눈에는 물고기가 물에서 유영하는 것으로 보였어요.

같은 방향으로 말이죠.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것 처럼요.

그 사실에 저는 정말 슬펐어요.

작품 그 자체보다는 제가 느꼈던 감정 때문이었어요.

아들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분명 그렇게 느꼈죠.

우리 인간도 똑같아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것은 분명 좋은 일만은 아닌 것이죠.

어머니는 항상 피할 수 없는 것은 맞서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저에게 분명 큰 영향을 줬어요.

[00:18:00]

어릴 때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그런 것 같아요.

전 어릴때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흥미로워 했어요.

종종 죽음을 생각했는대 할머니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셨죠.

제가 7살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요.

'죽음은 피할 수 없단다.

총에 맞지 않아도, 차에 치이지 않아도,

암에 안걸려도... 다 피해도 넌 결국 죽는단다.'

상어 작품은 미친 생각이긴 했죠.

어릴적 봤던 영화 '죠스(Jaws)'에 나올법한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상어여야 했어요.

[00:19:00]

한 마리에 약 2만5천파운드(약 4천만원)였는데 비현실적인 숫자였어요.

이 아이디어를 학교 친구들에게 말했었죠.

갤러리에 집채만한 상어를 탱크에 넣어서 전시하고 싶다고 하니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다들 웃기만 했어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게되었을 때, 상어를 구하는 방법부터 어떻게 할것이냐고 묻더군요.

탱크와 유리는 어디서 구해서 얼마에 어떻게 만들 것인지..

담배갑에 스케치를 하는 등, 그것들을 전부 확인해갔어요.

그리고 사치가(Charles Saatchi) 지원하기로 했어요.

[00:19:30]

지도를 보면서 상어가 서식하는 지역인 호주 주변을 봤어요.

그리고 서식지에 가까운 지역의 우체국을 모두 찾았죠.

'상어를 구합니다' 하고 제 전화번호가 적힌 전단지를 그곳들에 부착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2주 뒤 한밤중에 전화가 왔었죠.

그렇게 해서 상어를 구해줄 사람을 찾았어요.

동물원은 끔찍한 곳이죠. 그곳의 동물들은 모두 불행하죠.

[00:20:00]

죽은 동물들로 동물원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자연사(Natural History)' 이름의 끝없는 시리즈 어떨까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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