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WA Note

ARTWA Artist - 전경선 02

“회화는 어디까지나 물질의 환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단 당신이 강철 조각을 잘라서 세워 놓는다면 그것은 진짜가 된다. 또한 그것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면 당신은 죽을 것이다. 조각은 회화가 지니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그것을 태워 버릴 수도 없다. 어쩌면 그것은 핵폭풍이 불어도 살아남을 것이다. 이처럼 조각은 나라는 존재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는 영구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그것은 일종의 불멸성이다. 당신이 만든 모든 것들은 불멸에 대한 탐색이다. “ - 키스 해링(Keith Haring)

전경선 작가를 소개하는 두 번째 이야기로 근•현대 미술사의 ‘조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서양에서 역사가 깊은 대표적인 미술 장르인 회화와 조각은 2차원과 3차원이라는 다른 차원 속에 존재한다. 이 중에서 조각의 특성에 대하여 조금 자세히 알아보자면, 감상에 있어서는 ‘빛’이 필수적이며, 시각에 더해서 촉각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다양한 형태와 그것이 놓여지는 ‘공간’도 조각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서양에서 ‘조각가’라는 개념이 확립된 것은 15세기 말부터 이다. 그 당시의 중심 소재는 인간으로서 그들의 개성을 어떻게 하면 잘 드러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 1475~1564)는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과정과 가장 닮은 것이 바로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예술가들에게는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성자나 신을 묘사할 때도 그들이 가진 특성을 어떻게 하면 사실감 있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활발하지는 못했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다가 오귀스트 로댕(François-Auguste-René Rodin : 1840~1917)의 등장으로 다시금 조각을 미술의 중심에 놓게 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로댕의 작품은 당시의 대표적인 미술 양식인 신고전주의의 흐름에 맞추어, 그것을 넘어서는 표현주의적인 양식으로 살아 있는 듯한 깊이감 있는 형상들로 표현한 것이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조각은 급변하게 된다.

산업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조각의 영역이 확장되고 회화와 조각 간의 범주가 불분명해지는 탈장르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금속, 석조, 목제, 합성수지, 산업용 페인트, 플라스틱 등의 다양한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는 오래전부터 돌, 나무, 상아와 같은 단단한 재료에 형상을 쪼거나 새기는 기법을 의미하는 단어로 ‘조각(彫刻)’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지금의 미술 장르로서의 ‘조각’과는 다른 의미였다.

미술 장르로서 ‘조각’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1883년에 출간된 ‘한성순보’(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 제6호에 ‘조각물’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수입품 통관 시 세율을 고시하면서 ‘회화’와 함께 ‘조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1880년대 초에는 이미 ‘조각’이라는 용어를 장르적 개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점차 예술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일반인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하며, 1914년에 김진섭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조각을 배우기 위하여 도쿄 미술학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입학 후 3년 뒤인 1917년에 요절하여 작품은 남겨져 있지 않다.) 이후 김복진(1901~1940)이 사실주의 조각의 기틀을 다지면서 국내에서의 조각이 싹트기 시작한다.

조각이 하나의 장르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하면서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회화와 나란히 전시된다. 이 당시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사실적인 인물상 이었다. 특히 머리 부분만을 초상으로 재현하여 공적 공간에 전시한다는 개념은, 죄인의 머리를 잘라 공적 장소에 걸어놓는 형벌이 존재하던 전통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광복 이전의 근대 조각은 나무, 돌, 석고, 청동으로 된 사실적인 인물상을 주로 제작하였다.

김복진 <소년> 1940년 作

광복 이후인 1950년대 후반부터는 새로운 조각의 양식, 재료, 기법이 유입되면서 본격적인 발전과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사실재현적인 인물상에서 벗어나 추상조각이 등장하면서 그 표현이 다양해졌다. 이 무렵에는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 1876~1957)나 장 아르프(Jean Arp : 1886~1966)와 같은 현대 추상조각가들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한국 여성 조각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김정숙(1916~1991)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석조, 용접, 테라조 등의 다양한 조각방식을 수용했고, 주로 인간과 가족, 모성애 등의 주제를 반 추상 기법으로 다루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파리청년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 등의 국제전에 국내의 조각가들이 활발하게 참가하면서 국제 조각계의 동향이 국내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키스> 1907~1908년作

장 아르프  <변형> 1935년作

1970년대부터는 단순한 형태를 추구하면서도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는 기법에 관심을 두었다. 즉, 사실적인 인물상의 서술성과 연극성을 거부하고 작품을 온전한 물체(object)이자 그것이 만들어 놓은 순수시각적인 형태와 ‘구조’의 탐구를 지향하는 미니멀리즘의 경향이 확산되었다. 또한 당시 군사정권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각가들에게 각종 위인동상의 모뉴먼트를 주문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조각가들에게 잠시 경제적 호황을 누리게 했으나 이러한 작업은 창의적이지 않고 권력에 의한 것이라며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 조각은 훨씬 개방적이며 연극적•연출적일 뿐만 아니라 회화적인 특성까지 지니고 있다. 이전의 작품들이 대체로 단일한 재료에 의한 완결을 추구했던 반면 80년대 조각가들은 이질적인 재료의 결합에도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또한 이 시기의 조각에는 사회적 주제의식으로부터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자의식의 반영, 토속적인 민간신앙에의 회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문화에 대한 고발, 문명비판, 과거의 전통에 대한 향수 등이 서로 중첩되거나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백남준(1932~2006) 작품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삶에 영향을 끼친 여러 방면의 인물들을 로봇작품으로 제작, 오마주하여 비디오 조각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기존의 재료를 벗어나고 다양한 매체가 결합하여 조각이 탈장르 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조각의 흐름 속에서 1990년대 성신여대•동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한 전경선은 ‘회화적인 조각’이라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녀는 상상 속의 이미지를 조각이라는 형상으로 끄집어 낸다. 이러한 현상은 80년대 이후부터 한국 조각이 서사적인 내용을 담기 시작한 것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현실 속에 처한 고민과 번뇌를 벗어나기 위해 작업을 선택했다. 순수한 인간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투명한 세계’를 조각을 통해서 현실 속에 등장시킨다. 인간의 마음 속에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던 이곳에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네버랜드와 같은 ‘도피처’ 혹은 따뜻한 ‘치유의 공간’으로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인도한다.■

Text by 김은지

전경선 <기억_2000년 4월 비오던 오후> 2005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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