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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A PICK] Künstler 14 -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Eduardo Paolozzi)

생각과 내 주된 관심사는 예술가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해내는 데 있다. 그것은 아주 평범한 사물들의 변형으로 뭔가 경이롭고 평범하지 않은 것에 도달하는 것이다. 무의미하지도 도덕적인 것도 아닌 것으로...

-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1959년 -

파올로치 서명

파올로치 인물 사진

파올로치는 스코틀랜드(Scotland) 에든버러(Edinburgh)의 리스(Leith)출신으로 평범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1944년 세인트 마틴(Saint Martin 's School of Art)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여1944~1947년까지 런던 슬레이트 대학(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이후 1947~1949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하며 알베르토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진 아크 (Jean Arp), 콘스탄틴 브란 쿠시 (Constantin Brâncuşi), 조르주 브라크 (Georges Braque), 페르난도 레제 (Fernand Léger)와 친분을 쌓았고 이 시기의 예술적 교류는 파올로치의 후기 초현실적인 조각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파올로치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미국 잡지로 도배한 방과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가 소장한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오리지널 초현실주의 콜라주 작품 18점을 보고 그들의 작품에 크게 영향 받았다. 그는 이미 형상화된 ‘형상’을 이용하면서 작업하는데 점점 매료되었다. 파올로치는 3년간의 파리 생활을 뒤로하고 런던 첼시(Chelsea)에 스튜디오를 얻었다. 다양한 물성과 물건에 호기심이 많았기 때문에작가의 작업실은 조각품, 각종 도구, 장난감, 책, 잡지 등으로 가득했다. 물론 이 물건들은 모두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실험적인 조각, 콜라주 작업에 집중했다.




Self portrait, 1947, collage, 32x25.5cm

election 1923, 1947, collage, 25.5x20cm

1947~1952년 사이에 제작된 '콜라주' 작품에 작가는 <BUNK 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대부분 패션, 공상과학, 커버걸스 등의 잡지에서 오려낸 이미지를 합성한 작품으로 콜라주 작품을 완성했다. 선택한 이미지는 대부분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면서 이미 그 자체가 예술인 것들로 구성했다. 그는 이러한 작품들을 모든 관객이 동시에 볼 수 있도록 영사기를 통해서 16절지 크기의 용지에 담아 매우 빠른 속도로 연달아 투사했다. 색다른 방식의 전시는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파올로치는 1950년대 중반부터 스크린 프린트, 콜라주, 아르 브뤼(Art Brut)의 조각품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는 더욱 왕성한 미술활동을 위하여 <Independent Group>를 만들어 1950년대 후반 영국과 미국의 팝 아트 운동 선구자로서 자리매김한다. 작가는 점차 ‘소비 사회의 부산물’이 ‘문명 쓰레기’로 바뀌는 것에 관심이 바뀌었다. 언제나 ‘삶과 예술의 병행’을 강조했던 파올로치는 생활하면서 우연하게 발견된 객체에서 그 대상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목적성을 부정하며 서로 다른 객체들을 결합시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합성되어 확고한 파올로치만의 미술 스타일을 만들었다.

* 아르 브뤼(Art Brut):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의 미술로 뒤뷔페(Jean Dubuffet)가 1945년에 만들어낸 용어로서, 전통적 미술에 영양 받지 않은 순수하면서 원초적인 미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osaka steel, 1969, stahlblech/stahlrahmen, 731.5x366x355cm

waste, 1971, aluminium, 183x183x366cm

holzrelief for das cleish castle, 1972, kassettendecke, 8405x83.5x6cm

a new apirit in painting, 1982~1983, lithografoe und serigrafie, 50x65cm

1960년대 파올로치의 그래픽 작업은 시대를 앞서는 파격적이며 혁신적인 이미지로 가득했다. 특히, 실크 스크린 매체의 한계를 확장시키며 앤디 워홀과 함께 미술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 실크 스크린 매체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특히 인쇄물로 한정판 출판을 하면서 포스터, 인쇄 제작물이 예술 작품보다 대중에게 쉽게 소비되고 상품적 가치도 있다는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먼저 증명했다. 개별적인 모티브를 선택하여 그것들을 새로운 형태로 조합하고 그래픽을 위해 추상화함으로써 형태의 새로운 구성과 구조를 도입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작가는 미술 교육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1977~1981년까지 독일 쾰른에있는 파초 슈 끌레(Fachhochschule)의 교수였으며 이후 뮌헨의 아카데미 데 빌덴 덴 쿤스트(Bildenden Kunste)에서 조각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작업한 가장 큰 프로젝트는 런던의 토튼행 코트로드 스테이션(UB-station tottenham court rd)의 실내 모자이크 설치 작업이다.




o.t.,1984, UB-station tottenham court rd.,central line london

master of the universe, 1987-1989, kowloon park, hongkong

lost magic kingdoms and six paper moons, 1985~1989

그는 1987년 에든버러에 위치한 <Heriot-Watt>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9년 엘리자베스 여왕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파올로치는 2005년 뇌졸증으로 사망하기까지 생존에 명예와 명성을 모두 얻은 작가로 기록될 것이다.

파올로치는 훌륭한 작가이다.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전 생애를 거쳐 꾸준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20대의 재능이 넘치는 작가들을 찾기는 쉽지만 60대에도 여전히 천재적 재능을 소유한 예술가를 찾기란 어렵다. 작가는 젊은 시절 보인 뛰어난 재능을 죽기 직전까지 예술적으로 발전시켰다. 꾸준히 성장하는 작가야 말로 훌륭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장 - 스코틀랜드 국립 현대 미술관 (Art Museum of Modern Art) : 1994년 작가가 직접 다수의 작품과 자료 기증했다. - 건축가 콜린 세인트 존 윌슨 (Colin St John Wilson): 파올로치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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